예상과 다른 분위기다. 포커 게임 중 하나인 ‘홀덤’ 대회가 열린다고 해, 긴장감과 엄숙함을 예상했다. 테이블 위 카드가 뒤집어지고 패가 공개되면, 환호와 탄식이 터지고, 어떤 플레이어는 좌절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영화 속 대결 장면 같은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현장은 오히려 축제 같은 분위기다. 160여 평의 매장에 200여 명이 몰려 있다. 여성도 많고 어린 자녀와 함께 온 참가자도 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 10여 개의 테이블에서 홀덤 게임이 동시에 진행된다. 플레이어들이야 진지하게 게임에 임하고 있지만, 얼굴엔 웃음과 여유가 그려져 있다. 이기러 왔다기보다 즐기러 온 이들이다.
전국 아마추어 800여 명 북적북적
축제 현장 어린 자녀 동반객도 많아
이기는 게 아닌 ‘즐기러 온’ 사람들
온라인동호회 중심으로 활동 활발
KMGM 등 포커 위한 공간 늘어나
상대방 조합 예상, 행동까지 읽어내야
홀덤의 경우 운보다 실력쌓기 중요
포커, 숨어서 한다고?
포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2013년 포커 선수로 전향한 임요환 전 프로게이머의 상금 누적액이 3억 원을 넘었다거나, 개그맨 김학도가 프로 포커로 전향해 지난해 말 필리핀 대회에서 우승해 화제가 됐다.
포커를 즐기는 일반인도 꽤 늘고 있다는데, 이날 대회 규모를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한국홀덤스포츠협의회(KHSA)가 주최한 1회 ‘홀덤 페스티벌’은 홀덤펍 KMGM의 부산 사상점에서 지난 11일 오후 10시에 시작해 13일 오전에야 끝이 났다. 참가자만 무려 820명이다. 홀덤 동호회 회원 등 알음알음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모인 평범한 아마추어들이다.
KMGM 황성일 이사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밤새 쉬지 않고 토너먼트를 진행해 우승자를 가려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이날 대회엔 상금이 없다. 돈이 걸리면 불법이다. 대신 각종 상품이 걸렸는데, 최종 우승자는 29살 평범한 직장인으로 그랜저 차량을 받아갔다. 황 이사는 “다들 상품 욕심 때문에 모인 건 아니다. 공개적으로 포커를 즐기는 이들은 늘어나는데, 이들을 위한 행사가 부족하다 보니, 많이 몰린 것 같다”고 말했다.
포커를 즐기는 형태도 변화고 있다. 그동안 포커는 무박 야유회 같은 날 긴밤을 지새기 위해 지인들끼리 즐기는 오락이었다. 요즘엔 온라인 동호회가 활발해져, 포커를 즐기러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이기도 한다.
자연스레 포커를 위한 공간도 늘고 있다. KMGM은 홀덤에 특화된 프랜차이즈 펍으로, 사상점이 본점이다. 서면 등 부산에만 9곳 전국에 22개 지점이 운영 중이다. 부산에만 이런 포커게임 펍이 20개 가까이 있다고 한다. 카드게임을 위한 테이블, 칩 등이 준비돼 있고 교육을 받은 딜러도 있다. 맥주를 마시다 포커를 즐길 수 있고, 당연히 칩을 돈으로 환전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황 이사는 “만인에 공개된 장소라서 사행성 게임은 불가능하다”며 “동호회 모임도 열리고, 혼자와 맥주를 마시다 처음 본 손님과 함께 게임을 즐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바둑으로 치면 일종의 ‘기원’ 같은 곳이라는 게 황 이사의 설명이다.
포커와 바둑 그리고 스포츠
어떤 포커 게임이든 룰은 대체로 간단하다. 홀짝 게임과 비슷한 바카라에 비해 실력이 중요시되는 홀덤도 마찬가지다. 개별적으로 받은 카드 2장과 모든 플레이어이가 공유하는 커뮤니티 카드 5장으로 가장 높은 조합을 완성한 이가 이기는 게임이다.
하지만 공개된 카드와 자신의 카드를 비교해 다른 플레이어의 조합을 예상하면서 논리적으로 게임을 풀려면 상당히 머리가 복잡해진다. 고수들은 다른 플레이어들의 표정이나 행동까지 읽어 계산한다. 머리와 눈치가 꽤 요구되는 ‘마인드 게임’인 건 분명하다. 김학도 프로가 “전체적인 홀덤 룰을 배우는 건 한 시간도 안 걸리지만 파고들려면 논문과 자료가 많아 평생 공부해도 부족하다”고 말한 이유가 있다. 운보다는 실력이 중요하다 보니, 국제 포커 대회는 대부분 홀덤으로 치러진다.
홀덤 등 카드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포커도 스포츠다”라며 포커를 바둑에 자주 비유한다. 고도의 전략과 심리전이 필요한 게 닮았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음성적으로 내기 게임을 벌이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바둑은 정식 스포츠로 인정받고, 홀덤 등은 스포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원래 한중일이 포커에 유독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년새 일본, 중국은 포커를 정식 스포츠로 인정하고 프로 선수를 양성하고 있다. 이제 아시아권에서 포커를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한다.
포커의 스포츠화를 막는 건 도박성이 강하다는 이미지 때문이다. 이런 이미지가 실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홀덤바 등에서 칩을 환전해 주면서 불법도박판을 벌였다는 뉴스가 종종 나온다. 지금도 장례식장이나 야유회장에서 벌어지는 포커판에 소액이라도 돈이 오가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이에 대해 황 이사는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포커의 대중화로 훨씬 게임 문화가 건전해졌다”고 항변했다. 오히려 공개된 장소에서 즐기는 문화가 확산돼 사행성이 줄고 있다는 거다. 세계포커대회를 석권한 케빈 송 한국홀덤포커협회 초대 회장은 “옥죄기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도박중독 예방 교육을 어려서부터 실시하고 대신 건전하게 즐기는 오락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도박에 끌리는 건 사람의 타고난 기질 중 하나고,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누군가는 숨어서 큰 돈을 걸고 카드를 뒤집고 있을 것이다. 야구와 축구도 불법토토 사이트에선 도박으로 변질되고 있으니, 카드 도박이 완전히 사리지는 날은 오지 않을 듯하다. 대신 요즘 홀덤 바람을 보면, 공개된 장소에서 당당하게 포커를 즐기는 이가 나날이 늘어날 것도 확실해 보인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출처: 부산일보] [한국홀덤스포츠협 ‘홀덤 페스티벌’] 사행성 게임 ‘NO’ 상대방 표정까지 읽어내는 ‘마인드 게임’
의견 남기기